민주주의 4

미얀마 인권 회복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끝냅시다

지난 2월 1일, 미얀마 쿠데타가 발발하고 1년이 되었습니다. 군부는 민주정부를 전복하고 저항하는 시민은 학살과 구금으로 짓밟았습니다. UN과 아세안이 결의한 대로 폭력 종식과 사태 해결을 위해 국제 사회가 적극 나서야 합니다. 그런데 전 이런 질문을 드립니다. 왜 국제사회가 한마음으로 군부를 규탄하고 저항세력을 응원하는데도 군부 권력이 공고한 것일까요? 왜 민주주의의 길은 멀어 보이는 걸까요? 군부의 경제적 기반이 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민국 대표 기업이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을 저는 지적하고자 합니다. 포스코인터가 운영하는 미얀마 가스전에서 나오는 3천억 원의 수입이 군부의 자금줄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공공연히 확인된 사실입니다. 가스전을 운영했던 다른 해외 기업인 토탈과 쉐브론은 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기본소득을 반드시 실현해내겠습니

오늘 저녁 배은심 어머니 가시는 길에 함께했습니다.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았던 현장 근처, 한열동산에 어머니의 영정이 세워졌습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연세대 교정에 울려퍼진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오히려 남은 이들을 깊게 위로합니다. 어머님 가시는 날이 너무 춥지 않아 다행입니다. 35년만에 만난 아들의 손을 쥐고 가시는 길이 따뜻하고 평온하시길 빕니다. 아들 이한열만큼이나 배은심 어머니는 우리 시대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셨습니다. 누구보다 치열한 운동가로 사셨던 어머님의 뜻을 이어나가겠습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기본소득을 반드시 실현해내겠습니다.

'1987'의 이름, 박종철 열사 35주기 추모제에 참석했습니다

박종철 열사 묘는 마석 모란공원 언덕 꼭대기에 있습니다. 저는 모란공원 추모제에 거의 해마다 왔습니다. 올 때마다 눈이 공원을 하얗게 덮었는데, 올해엔 눈이 적게 내렸나 봅니다. 항상 눈길을 헤치고 오신 분이 안 보입니다. 배은심 이한열 열사 어머님입니다. 오늘 아침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열사의 어머니였다가, 스스로 투사이자 운동가로 사신 또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저는 박종철 열사의 10년 후배입니다. 학교 다닐 때는 교정에 추모비를 건립하는 운동을 벌였습니다. 졸업 후엔 뜻 맞는 동료들과 ‘박종철인권장학금’을 만들어 최근까지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전했습니다. 또 민주열사 박종철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시키지 않았는데 이런 일을 한 건, 박종철 열사가 제 삶의 일부였기 때문입니..

'1991년 5월' 전시전을 방문했습니다

전시전을 관람했습니다. 이한열기념관이 매년 여는 기획전시전 주제가 올해는 30년 전 1991년 5월 항쟁의 ‘얼굴들’입니다. 장진석 학예사님과 이은영 사무국장님의 해설을 들으며 역사의 책장을 들춰보았습니다. 승리한 집단 기억으로 남은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달리, 1991년 5월 항쟁의 의미는 제대로 정돈되지 못했습니다. 강경대 열사가 돌아가시고 많은 열사가 그 뒤를 따랐다고 알고는 있습니다. 그러나 몇 분을 제외하면 열사들의 이름도, 삶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별로 없습니다. 전시전은 강경대 열사를 포함해 1991년 5월과 6월에 분신, 의문사, 또는 국가폭력으로 돌아가신 열 한 분 열사를 미술로 표현했습니다. 새로 알게 된 분은 이정순 열사입니다. 열사는 1991년 5월 18일 강경대 열사의 장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