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풀무질에서 열리고 있는 <당신의 얼굴 Your soul> 비질 사진전을 보러 다녀왔습니다. 비질이라는 말이 여전히 생소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요. 도시에서 멀리 떨어 있는 도살장에 찾아가 축산업의 현실을 직면하며 기록하는 활동을 비질이라고 합니다.
전시장에 가기 전, 미리 공개된 홈페이지를 통해 전시를 둘러보고 출발했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볼지 알고 왔다고 생각했는데, 전시장에서 제가 경험한 것은 전혀 다른 감각이었습니다. 사진만 보았을 때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는 말이 떠올랐었지만 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것은 말 그대로의 비명, 고통의 신음이었습니다. 이 선명한 비명을 인간이 지웠던 것뿐입니다.
‘극도의 권리는 극도의 불의이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권리는 반드시 다른 누군가를 착취해서 얻은 것일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이제 우리의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던 육식에 대한 질문이 필요한 때입니다. 전시는 이렇게 묻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식탁에 오르는 고기가 착취와 학살의 결과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고통을 느끼는 존재들을 철저하게 외면하는 것이 옳은 것입니까?
또 저는 물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 사회의 축산업이 지금의 형태로 유지되어도 되는 것일까요?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 축산업이 존재해야 하는 것일까요? 비인간동물을 끊임없이 수탈하고 학살하며 그들의 수와 신체를 마음대로 변형하는 무소불위의 권리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저는 이번 대선에서 이 질문들을 대선판에 던지며 끈질기게 답을 찾아나가겠습니다.
한편 전시를 둘러보며 제가 르포작가로서 해왔던 기록활동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해왔던 기록작업은 비질과 성격은 다르지만 고통받는 존재들의 곁에서 그들의 고통을 기록하는 활동이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집니다. 작가로서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하고 다양한 현장을 기록하며 느낀 점이 있습니다. 고통은 단순하거나 일방적이지 않고 다양한 결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29번의 비질을 경험한 작가님께서 느끼셨을 고통의 결 역시 상상 그 이상으로 깊고 넓을 것입니다. 그 깊이와 넓이를 온전히 짐작할 수는 없겠지만 저 역시 어떤 얼굴을 가지던, 존엄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비인간동물에게 가까이 다가서서 감춰져있던 현실을 기록해주신 노혜린 작가님의 노고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기본소득당 오준호 > 오준호의 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활동반자법이 실현된 2022년의 크리스마스로 초대합니다 (0) | 2021.12.24 |
---|---|
대통령 사면권이 민주당 주머니 속 현금입니까? (0) | 2021.12.24 |
심상정의 시민평생소득보다 오준호의 기본소득이 더 나은 이유 5가지 (0) | 2021.12.22 |
'1991년 5월' 전시전을 방문했습니다 (0) | 2021.12.22 |
'성인 남성'에 맞춰진 의료시스템, 여성환경연대와 바꾸겠습니다 (0) | 2021.12.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