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다른 많은 청춘들처럼 저도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읽고 '똘레랑스' 프랑스를 동경했습니다. 20년 동안 홍세화 선생님은 시대의 굴곡마다 용감하게 발언하신 한국의 '에밀 졸라' 셨죠. 제가 <노동자의 변호사들>을 출간하자 선생님은 책을 읽고 트위터에 추천하셨습니다. 선생님은 기본소득 운동의 초창기부터 연구하고 강연하며 씨앗을 퍼뜨리셨죠.
지난 17일(금) 서울 인사동에서 홍세화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홍세화 선생님은 7년째 '장발장 은행' 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벌금 낼 돈이 없어 감옥 가는 사람이 한 해에 3만 5천 명이라고 합니다. 장발장 은행은 벌금을 못 내 구치소에 가게 된 사람들에게 소액 대출을 해줍니다. 홍 선생님은 말합니다. "그분들이 3년 전부터 기본소득을 받았다면 과연 지금 처지에 놓였을까요."
홍 선생님은 제게 "세금 폭탄론에 맞서는 후보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한국은 국민부담률이 유럽 복지국가보다 한참 아래인데도, 정치인들은 세금폭탄론으로 국민을 호도하거나 또는 증세 이야기를 못 꺼낸다고 지적하셨습니다. 프랑스에선 국민부담률이 대선 핵심 쟁점이라고 합니다. 좌파는 국민부담률을 높여 복지를 튼튼히 하자고 하고 우파는 기업이 어렵다며 부담률 인상에 반대한다는 거죠. 우파 논리야 익숙한데, 한국 정치에는 좌파의 주장이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중세 고성을 임대주택으로 개조한 프랑스 지방정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법률로 정한 최소 주거기준을 맞추기 위해 중세 고성까지 활용했다는 거죠. 이제 한국은 경제규모와 국민소득으로 프랑스를 따라잡았다 하는데, 약자의 기본권을 대하는 태도에서 여전히 프랑스는 저만치 앞선 나라입니다. 용산 동자동 쪽방촌을 둘러본 기억이 나서 씁쓸했습니다.
홍 선생님과 만난 카페 '열시꽃'은 구수정 한베평화재단 이사님이 운영합니다. 구수정 선생님과도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저는 구 선생님이 이끄는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여해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현장을 둘러봤고, 돌아와 <솔직하고 발칙한 한국 현대사> ‘베트남 전쟁’ 편을 집필했습니다.
두 분 선생님 조언과 응원,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정의, 평화 그리고 기본소득 실현 위해 더 열심히 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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